중앙일보 – Jun 02, 2015





비영리법인 이노비, 9년 동안 병원·양로원 찾아 봉사 강태욱 대표 "북한 동포에게도 음악회 선물하고 싶다"

세계의 문화, 금융, 외교의 중심지로 통하는 미국 최대 도시 뉴욕.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과 월스트리트, 브로드웨이, 유엔본부 등 명소가 즐비해 매년 5천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도시이지만, 화려함 뒤에 가려져 있는 그늘도 만만치 않다. 범죄 위험이 커 왕래가 꺼려지는 흑인밀집지역 할렘이 있고, 맨해튼 한복판에서 어렵지 않게 노숙인을 만날 수 있다.

관광명소인 센트럴파크에서는 대낮에 '묻지 마 폭행'이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 이런 양면성을 가진 뉴욕에서 어두운 쪽을 밝게 만들려고 9년째 애쓰는 한국인 설립 자선단체가 있어 시선을 끌고 있다. 병마 또는 장애와 싸우는 소외 계층에게 '기쁨과 희망'(Joy & Hope)을 주려고 설립된 이노비(EnoB)가 주인공. 비영리 법인인 이노비는 7월 2일(현지시간) 뉴욕 플러싱의 유니언 플라자 양로원에서 다민족 노인을 모시고 공연을 펼친다.

이날 공연은 숱한 어려움을 극복해 온 이노비가 소외계층에게 선사하는 200번째 선물이어서 더 뜻 깊은 자리가 될 전망이다. 이노비를 이끄는 강태욱(44) 대표는 "한번을 공연하더라도 제대로 하자는 생각으로 달려왔는데 벌써 200회 공연을 하게 됐다"며 지난 9년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강 대표가 재능 기부 비영리단체를 만든 것은 10여 년 전 미국에서 열린 소아암 어린이를 위한 자선공연이 계기가 됐다. "고통을 겪는 어린이와 가족들을 위한 공연이 열린다는 이야기에 가슴이 뛰었습니다. 평생 이런 일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 때까지만 해도 이런 '떨림'을 본업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이로부터 1년여 뒤에 뉴욕 퀸즈의 장애인 복지관 선생님들이 자폐 어린이를 위한 공연을 하고 싶은데도 여건이 안돼 어려움을 겪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강 대표는 직접 단체를 만들어 운영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젊은 시절부터 장애인 사랑을 실천해 온 선친도 그에게 용기를 심어줬다. 최근 작고한 강세윤 가톨릭대 의대 명예교수는 40여 년 이상 장애인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며 아들을 인도했다.




강 대표는 공연을 통해 다른 사람들, 나아가 사회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있다. 비영리단체의 이름도 변화를 끌어내는 다리가 되자는 의미인 '이노베이티브 브리지'(innovative bridge)를 줄여 만들었다. 법인 설립이후 소외계층을 찾아가 음악을 선물하는 일이 본격으로 시작됐지만 가시밭길이었다.

당장 행사에 들어가는 비용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았다. 강 대표가 모아 둔 돈으로는 부족해 가족에게서 돈을 받아오기 일쑤였다. 이노비의 자선 활동이 알려져 지금은 후원금이 제법 들어오지만, 여전히 연간 12만 달러에 달하는 비용을 충당하기에는 부족하다. 그래도 재능을 기부하겠다는 음악인들이 많이 늘어난 것은 큰 힘이 되고 있다.

재즈 피아니스트인 송영주와 드럼연주자 이상민,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소속 소프라노 이윤아 등 350여 명이 재능을 기부하는 풀(pool)을 구성하고 있다. 강 대표는 공연에 참여하는 음악가에게 비용이라도 주려고 노력한다. 그래야 수준 높은 공연을 이어갈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이노비의 자선공연 범위는 계속 확대되고 있다. 초기에 연간 10회 안팎이었던 공연이 지금은 70여 회로 불어났으며, 생을 마감하기 직전인 호스피스 병동 환자까지 찾아가고 있다.

3년 전부터는 평택(기지촌 할머니), 완도(다문화 가족) 등 한국에서도 공연하고 있으며, 작년부터는 중국 선전에서도 열리고 있다. 이노비는 새로운 자선 프로그램도 올해 안에 뉴욕에서 시작할 계획이다. 음악 또는 미술을 통해 현대인의 아픈 마음을 치유하는 이른바 음악 요법, 미술 요법을 3〜4개월 내에 시작하기로 하고 준비에 한창이다. 강 대표는 북한에서도 자선 공연을 하고 싶다는 꿈을 오랫동안 꾸고 있다. 북한 공연을 위해서는 정치적인 논의가 있어야 하고 훨씬 큰 비용이 투입되겠지만, 강 대표는 "부족한 부분은 하나님이 채워 주실 것으로 믿으며" 세계에서 가장 폐쇄된 사회의 동포에게 음악회를 선물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